2/21/2011

친구 찾아 국경너머 선술집으로 .. :p ,Rochester Michigan Dec 3 2010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않을까..!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이 공자의 일갈이 참 와 닿았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평생 그저 배우기만 한 것 같다.
배움을 넘어 제대로 익혀 그 부가가치의 재생산에 동참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공익에 기여하기 보다는,
걍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자족감으로 혼자 즐거워 했던 시간들..

공자의 다정함과 멋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또 한마디..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을소냐..

공자 시절에는.. 친구 찾는 길을 떠나기 위해 잘해야 노새 정도의 등에 오르거나
아님 짚신이나 가죽신 서너 켤레 준비해 서책과 미숫가루 봇짐 단단히 메고
하늘을 지붕 삼아 터벅이며 걷기 시작했을 텐데..

그 어려운 춘추전국 시대 산적들은 오죽 이나 많았을까..
또 오래된 비석을 베고 노숙을 하다 보면 얼마나 많은 도깨비들이 들락거렸을까..
운이 좋다면 천녀유혼의 왕조연 같은 어여쁜 요괴도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ㅋ

좌간.. 그 친구, 산적에게 털려 홀딱 벗기우지도 않고,
요괴나 귀신들한테 그리 큰 괴롭힘 당하지도 않고서
몰골이 좀 상했을지라도 멀쩡한 행색으로 떡하니 친구 앞에 나타난다면,
그 기쁨! 무엇에 비하리오. ㅎ

..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천지신명 맙소사.. 어여 들게! 어여!

따뜻한 남쪽 지방 친구, 사랑에서 글월 외우다 전혀 예기치 못한 벗의 기침소리에
반가워 어쩔줄 모르며 방문 제치고 뛰어 나와 반겼을텐데..



hp 컨설턴트 시절, 돈수는 고객이었던 삼성전자의 프로젝트 팀 멤버였는데
그가 삼성에서 hp 로 직장을 옮겨 나와 팀의 동료가 되었었다.

이후 난 아태지역 hp으로 옮기고 돈수는 미국 GM 프로젝트 멤버로 join 한 후 미국 hp로 옮기고..
그 당시 이곳 미시간에서 터를 잡은 돈수는 둘째를 낳고 십년이 훨씬 넘게
이곳 로체스터에서 살고 있다.

지난 가을 돈수가 먼저 내가 사는 토론토를 방문했고, 이번엔 내가 그의 동네를 오게된 것인데..

국경을 넘으려면 반드시 복잡한 수속을 거쳐 오랜 기다림속에서 비행기나 대형 여객선을 타야하는,
소위 해외로 나가야 하는 한국과 달리, 유럽의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곳 북미에서는 간단하고 싱겁다.

차량으로 국경을 넘을 경우, 그저 십여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속이거나 아님 차창을 빼꼼히 열고
마치 drive-In 햄버거 가게에서 하듯, 창문 넘어 패스포트와 ID를 건네 주고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다.

해서.. 그 어지러웠던 공자시절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멀리서 찾아온 친구의 정성에 비하면
도저히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그래서 유붕자원방래.. 운운하기가 매우 겸연쩍긴 하지만
그래도 사오백 킬로미터의 먼길을 단숨에 달려 친구를 찾아 온거다. ㅎ






그것도 네비게이터에 지정한 집 주소로 바로 친구네 집 주차장 정문 앞에.. ㅋ

.. 이리 오너라~~!
.. 오~ 형님 왔수!



미시간에서 작지만 부유한 마을인 로체스터는 오랜만에 보는 전형적 미국 마을이었다.

오랜동안 미국적인 것에 익숙해 있었던 난,
캐나다에 처음 도착해서는 미국에 비해 소박함을 넘어 누추하기 까지한 도시와 마을의 풍광과
커내디언들의 검소한 생활에 놀라기도 하고 저으기 실망스럽기도 하고 했는데..
이젠 캐나다 사람이 다 되어가는지 오랜만에 보는 미국 마을의 화려함과 시끌벅적함에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로체스터 읍내가 여느 곳보다 세금이 많이 걷히는 부유한 동네라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저택들이나 평범한 주택들에서나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의 화려함과 다양함은
캐나다의 그것들과는 매우 차이가 컸다.




돈수는 로체스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흥겨운 분위기의 마이크로 브루어리로 바로 날 데리고 갔다.

자동차와 운전하는 것를 매우 좋아하는 돈수는
이제 겨우 1,500 킬로 주행한 내 새차를 몰고 시내로 나선 것이었다.
거의 장갑차 수준인 돈수의 BMW 745에 비해 날아 다닐 것 같이 가벼운 우리의 소렌토는
돈수에 의해 가벼히 날아 모든 건물들이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장식된 로체스터 읍내에 있는
왕년의 양조장이었고 지금은 자신들의 맥주를 만들고 있는 대형 선술집이자
아담한 규모의 컨서트 홀을 갖춘 이곳 바로 온 것이다.


내가 주로 다니는 토론토의 술집들에 비해 일단 규모가 크고 장식이 화려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리는 그 품새가 딱! 미국 분위기 그것 이었다. ㅎ




돈수에 따르면 동네에서 음악 좀 한다 하는 친구들이 나와 컨서트를 한단다.
좀 어설프긴 했지만, 흥겨운 락으로 사람들의 흥을 돋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많은 사람들이 플로어로 나와 춤을 추게 된다.








화장실이 확보된다면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맥주의 특성상
RESTROOMS 표식이 제대로 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ㅎ


이 술집에서 빚어내는 여러 종류의 맥주를 시켜 마셨다.
그런데 아무래도 로컬 맥주공장이라 숙성이 덜 되었는지 난 마구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현지주민 돈수는 끄덕없어 보였고, 오히려 해맑은 미소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ㅎ

맥주를 들이키며 흐믓한 마음에 나는 몇번이고 돈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 이리 서로 왕래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돈수가 살고 있어 너무 좋다~~ :-)


잠시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오는데
평소에 마음에 들었던지 돈수는 저 귀여운 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워낙 규칙적으로 운동을 즐겨하고 공기가 좋은 곳에 살아서인지 돈수 역시 나이 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농구를 좋아해 읍내의 스포츠 센터에서 매일 저녁에 젊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돈수는 거의 20대 체력이다.




이제 잔뜩 취기가 올라 우리 테이블을 맡았던 예쁜 waitress의 사진이 마구 흔들리기도 했다.
우리 두사람에겐 이곳을 나설 시간이 된거 였지만..




사실 금요일 밤의 열기는 이제 막 달아오르고 있어서 선술집은 이제 동네 사람들로 가득차오고 있었다.
백인 동네의 백인들이 즐기는 선술집이라 그런지 동양 출신 손님들은 우리 두사람 밖에 없었다.
사진에서와 같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들 금발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사는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
역시 가장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미국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전적으로 백인 위주의 구성을 대하자니 새삼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흑백 갈등의 아픔의 역사를 가진 디트로이트 인근 소도시들의
자본 계급적 사회에서의 주류 인종 공동체의 단면을 여실히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서 30분이나 떨어진 업타운 중에서도 아주 부유한 업타운이었던 거다.






아무래도 여독이 있었던지 꽤 취기가 오른 상태로 돈수네 집으로 돌아온 우린 와인 한병 반을 마셨나 본데
마지막 잔에 대한 기억은 온데 간데 없고 다음날 아침 돈수네 게스트 룸 침대에 엎어져 있는 날 발견한다.





오.. 양조장의 기억이여.. ㅎ

돈수, 너무 즐거웠어. 내년 봄 토론토에 제수씨랑 함께 방문하시기 바람.  
좀 감각적인 노래 들으며 안녕~~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이런 노랠 들으면 괜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오르며.. 예전의 그 풋풋함에 가슴이 설레기도..
회상적 기분이 주로 달콤하게 다가 온다면 운 좋게 살아오고 있는 것일테니.. 감사 해야겠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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