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013

영화관의 추억..Train of Thought.. , COEX Seoul Korea Jul 21 2009



어렸을적 영화관은 내게 아주 컴컴한 곳으로 기억된다.
월하의 공동 묘지와 같은 머리긴 소복 귀신이 묘지를 반으로 가르며 나오는 영화가 많았고,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곤 했던 벤허 풍의 소위 당시의 헐리웃 블록 버스터들도 있었다.
국민학교 저학년일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 본 야성의 엘자(Born Free)는 평생 기억에 남는다.
당시 영화를 몰입해 보시던 어머니의 옆 얼굴.. 너무나 인상적이라 잊을 수 없다.
애국가가 흐르면 모두가 일어나 애국심을 고취해야 했고, 흑백 대한 뉴스가 뒤를 이었었다.

영화관은 내가 살아본 여러 마을들에서 거의 제일 오래되다시피하고 아마도 가장 큰 건물이었을 텐데,
우중충한 회색빛 색조를 가진 그 거대한 건물의 전면엔 상영중인 영화를 선전하는 화려한 간판과 함께,
그 영화의 스틸 컷들을 십여장 붙여 놓은 영화 안내 보드가 설치되어 있곤 했다.
그리고 매표소인 소위 Box Office는 돈과 영화표를 교환하는 아주 작은 구멍 말고는 꽉 막혀 있었는데
돈을 넣으면 표를 내어주는 그 하얗고 이쁜 손의 주인공 얼굴이 어떠한지는 알길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극장은 아주 화려한 곳이었을 것이다.
극장 자체가 드믈었음은 물론이고, 비디오 매체가 전무했던 라디오 전성기 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극장주는 큰 부자 축에 속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 마다 나름 내노라하는 토호 재산가들에 의해 그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로 극장이 들어서게 되었을 것인데,
그러한 호시절은 흑백 과 컬러 TV 시절을 지나며 극장 비지니스의 기세는 완전히 꺾여 이젠 마을의 가장 큰 건물 이라는 자리매김 이상을 넘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다시금 극장 영화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영화관은 더 이상 어둡고 침침한, 그래서 內密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공간보다 밝고, 쾌적하며, 컬러풀 하게 고급화 되어 사람들을 압도하고 위축시킬 정도로 기세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
요즘 영화에서 추구하는 미장센이나 시나리오의 탄탄함에서는 이제 더 이상 촌스러움을 찾아 보기도 힘들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예전이 그립기도 하다.

그 어두컴컴한 공간 한구석에 홀로 앉아 슬며시 연애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 청년도 있었고,
가난한 연인들이 어깨를 기대면서 사랑을 소곤 거리기도 했고,
오징어 냄새, 맥주 냄새 솔솔 풍기며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에 박장대소하며 흥분하던 좀 정신나간 아저씨도 있었고..
시간을 때우러, 혹은 잠시 잠을 청하러 온 듯 동시영화 상영 내내 콜을 골며 자던 그리 밉지 않던 작업복 차림의 일꾼들도 있었고..


이곳 코엑스의 메가박스 시네마엔 많이도 왔다.
대치동 살때는 삼성동이 바로 코앞이라 주로 가족들과 왔었는데, 모든 해리포터 시리즈, 모든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다 이곳에서 봤다.

티켓 발매기가 있어 이제 길게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완전히 개방된 박스 오피스로 인해 희고 이쁜 손의 얼굴들은 고개를 들기만 하면 언제나 볼수도 있고..
극장내엔 떨어진 휴지도 없고, 큼지막한 관람석 의자들은 머리가 닿을 정도로 높아 불편이 없고,
생산자가 분명한 안전한 movie snack 들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하지만 이러한 모든 편리함과 안전함과 쾌적함을 넘는 따뜻함, 뭔가 실소를 자아내게 하면서도 소위 인간적인 구석, 불량식품이지만 웬지 눈길이 자꾸 가는..
그러한 것들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지불한 비용 만큼의 댓가에 대한 더도 덜도 없는 서비스를 받으며 그만인 것이다.

토론토에서도 두가지 종류의 극장이 있었다.
삼성동 메가박스와 같은 복합 상영관인 Alliance Cinema 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그리고 다큐멘타리들을 상영하던 Cumberland Cinema.
난 그 예술영화 전용관이 좋았었다. 자주 가다보니 영화관 스텦들하고도 인사를 하고 지냈고,
수요일 인가엔 거대한 팝콘과 커피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하고, 오후에 좀 일찍가면 막 깍아주기도 하고..ㅎ
영화 자체에 대한 선호도도 있었지만, 그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감도 많이 작용했었던 거다.
하지만 Cumberland Cinema는 이제 토론토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토론토를 떠나올 즈음, 그곳은 건물을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문을 닫은 것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였을텐데, 그 극장이 허물어 지고 초고층 콘도가 들어설 것이다.

서울의 인사동에 있는 아주 이쁘고 소담한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 나다.. 부디 오래 운영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영화관에서는 공간 자체, 그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들 자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최대한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그 개방성이 주는 매력이 크지 않다.
공간의 기운이, 사람들의 손때가 느껴지기 힘들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의 여운은 남지만, 그 영화를 상영했던 공간의 여운은 전혀 없는 차가운 세상이다.
마케팅의 외침만 가득한 욕심많은 공간이 되어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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