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2016

공간의 향기.. , 요크빌 헤이즐턴 애비뉴 Hazelton Ave. Yorkville Toronto 2008 ~ 2010




Georges Moustaki: Il y'avait un jardin.. it had a garden.. 그곳엔 공원이 있었다네..




현생 인류 기원의 적용 범위에 따라 인간은 수십만년 전 혹은 수만년 전부터
주어진 자연 환경에서의 치열한 생존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간 지각력을 계발 시켜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존 환경의 활용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지어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집단적 지혜나 개별적 지능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 시절의 초기 인류에게 
툭 터진 사바나 이던, 지독한 습기의 밀림 속이건, 혹은 북극의 눈보라가 몰아쳐대는 북반구의 산악지대이건
혹독했을 자연 환경에서의 공간은 그저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의 마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운좋게 먹이거리를 사냥했을 경우 안전한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섭취 시간과 
소화를 위한 휴식을 제외한다면 지속적인 이동을 시도했어야 했을 것이고 
정해진 일정 공간에서의 반복적 삶, 일상적 삶은 요원한 것이었을 것이다.

Nomad 란 단어가 가지는 유랑민들의 '고단하지만 자유로운' 낭만적 삶의 이미지는
원시 인류가 겪었던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굶느냐 배부르게 먹느냐의 
하루살이 삶을 구체화 생각해 본다면 여지없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인류의 몇몇 그룹들이 비옥한 곳에서의 정착을 시도하면서 
그 주변 공간을 차지하며 무리지어 모여사는 오늘날과 같은 삶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수천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고작 오륙천년 전의 일이다.

정말 대단한 사실은..
지구의 나이, 우주의 나이에 비해 오천년이라는 시간은 눈한번 깜빡할 시간도 못 되지만
지구상의 생물군 중 인간에 의해 인간 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이 전 지구를 통해 확대되어 가면서
이제 지구의 거의 모든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역 표시라는 동물의 본능적 행위로 본다면.. 인간은 지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구 생태계 역사에서의 인간 대 '그외 모든 생물'과의 영역 다툼은 이제 거의 끝 난 듯 한데..

생각해볼 만한 것은,
인간과의 생존경쟁에서 일견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고 조신한 처신을 하고있는 듯 한 
그 비인간형 생물들이 사실은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전 부터 지구를 차지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끝까지 살아 남는 자가 승리자다' 라는 사실은 진실인 것이다.
인간의 사회 생활에서든, 種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든..
번쩍 번쩍하는 지능과 깊은 감성 그리고 엄청난 추진력으로 한때 조직을 이끌고 지구를 지배했지만..
so what..?  그래서 끝까지 살아남았던가..?  라는 물음이 오랜 시간.. 아니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스마트한 신영장류의 'Anthropology : lessons learned review' 시간에
혹은 끝까지 살아남고 있는 아주 원초적인 박테리아들의 유전자속에 새롭게 되 새겨질 지 모른다.. 


어딜가도 좋았던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적극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또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되고 
또 그러한 공간 속에서 소요하는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음이 운이 좋다 아니할 수 없다.




단연 시각적으로 날 즉각 사로 잡았던 꽃 바구니가 놓여진 창틀.

상아색의 벽에 낡은 버건디 색 나무 창틀,
그리고 florist 의 손길이 느껴지는 color mix 가 제대로 된 화분들.

누구나 예쁘고 상큼한 느낌을 가졌을 것이고,
그 공간을 그렇게 유지하는 주인의 안목을 칭찬할 것인데..

모태인 자연과 조화되기 어려운 매우 독자적인 공간을 추구해온 인간은
이제 비용이라는 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면서 자연-적대적인 공간의 확대가 가속화 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벙커 나 토치카와 같이 너무나 튼튼하게 시멘트로 지어진 저러한 벽면의 작은 공간에 
살며시 자연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나름대로 그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심지어 방사능까지 조금씩 새어나오기까지 하는 100% 화학적 배합물인 시멘트로 이루어진
두터운 벽과 어여쁘기만 한 작은 꽃들의 주는 극적 대비는
나로 하여금 悲感한 미적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함으로써 카메라에 들어 올리게 하는 것이다.





고가 예술품 경매의 최고봉 소더비 Sotheby 건물의 짙푸른 차양은 그들의 세련된 권위를 자랑한다.
헤이즐턴 애비뉴는 이러한 고급 미술품 경매 갤러리들이 즐비해 있는 토론토에서 가장 우아한 거리가 되겠다.

...

어제 오후..
내가 토론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 중 한 곳인 
해이즐턴 거리가 있는 요크빌 Yorkville 주변을 걸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결국 오후 늦게엔 처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지만
거의 60십년의 기록을 깨는 오랜 봄 가뭄 끝에 내리 단비였다.

별일이 없이도 이곳은 밤이나 낮이나 그저 한가로이 거닐면서 
많은 초 고급 갤러리들 구경과 주변 주택가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 구경이 좋은 곳이다. 
또한 제대로된 고급 레스토랑과 바도 즐비한 곳.

어젠 토론토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큐멘타리 필름 페스티발인 
HotDocs 영화제의 영화를 보려했는데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보통 토론토에서 줄을 선 사람들을 보는 건 전혀 흔한 일이 아닌데, 
주로 이와 같은 영화제가 열릴 때가 그렇다.






Heffel 미술품 경매소 앞에 서있는 할머니 와 말, 개 그리고 말을 탄 원숭이 조각상.
Joe Farad 의 'Emily Carr and Friends' 란 제목의 작품이다.

.. 노인을 위한 동물은 있다.. 

노인 애밀리의 곁에서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는 이들은 동물 친구들만 일지 모른다.
天刑 적으로 고독을 부여안고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려니.. 




구부정한 허리와 늘어진 어깨, 촛점없는 눈.. 힘없이 벌어진 입..
오른손엔 필기구를 들고 왼손엔 서류봉투를 들었지만
뭔가 재화를 창출한 부가가치가 있는 일은 아닐 듯 한데..

그녀를 둘러싼 장난꾸러기 멍키 와 튼튼한 다리의 말 그리고 충실한 강아지,
힘없이 늙어가는 그녀를 위해서는 더할 수 없는 동반자들 일 것이다.

이 그림들은 작년 여름, 햇살 아름답던 어느 여름날 담아본 것들이다.
'애밀리와 그의 친구들'이 있는 이 작은 공간에 오후의 햇살이 
가로수 잎새들을 비집고 비칠때 마음이 서글퍼지면서도 따스해 졌다.

.. 인생은 그래도 아름다운가요..?   에밀리 할머니..  

저도 이제 곧, 아이들에게서 그런 물음을 듣겠지요..
뭐라 대답 할지요.. 간단하진 않군요.

참고로.. 에밀리 카 (Emily Carr)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정받는 화가 이자 작가중 한 사람이었다.







공간에는 그마다의 냄새가 있는 것 같다.

물리적 향기라기 보다는 
경험에 의한 기억, 공간의 구도, 색, 빛 그리고 그 공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
등등의 logical 한 의미에서..

스칠 듯 말듯한 아스라하고 우아함 이거나,
도를 넘은 독한 향수가 발산하는 천박하지만 너무나 강렬한 자본의 향취이거나,
단조로움과 나른함으로 연신 기지재를 펴게 하기도 하는 무색 무취적 禪적 향기 이거나,
공포 가득한 기분나쁜 죽음의 냄새 혹은 거룩함과 성스러움이 그윽한 또 다른 죽음의 향기 이거나..  

시간의 향기가 가득한 역사의 공간에서는 
그 에피소드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조합으로 생성되는표현하기 힘든 향기도 있었고

이곳 처럼 지나는 이들의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향취를 머금으면서도
그 거리 자체는 고요함을 넘은 심심한 공간이거나..

작업자들의 노동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마구 움직이는 소음이 가득한 치열한 삶의 현장이거나..

그 공간이 저마다 가지는 고유의 주파수, 색조 그리고 향기가 좋다.

총을 가슴에 안고선 엎드렸다 누웠다 뒹굴기를 해가며 철조망 아래를 기어갈때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함게 피어오르던 마른 흙 먼지의 향기..
실제 전쟁이 아닌 훈련을 위한 병정 놀이 공간은 신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포장되지 않은 국도 길.

두 줄 가로수 난 길을 따라 앞서 가는 버스에서 풀풀 풍기는 흙 먼지와 함께 
벼 익는 훈훈한 향내가 있었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찾아가는 지점 마다의 
따뜻하고 행복감에 젖게 했던 공간들과 각기 독특했던 향기들..

그립다.  



공간의 향기.. resonance of a space, Book Store U of Toronto 2008, memo added in Sep 9 2014

내가 사는 이곳 사스카츄완의 향기는 대륙의 향기.. 그리고 겨울의 향기다.
이곳은 가히 겨울 왕국이라 불릴만하다.
겨우 구월초인 오늘 아침 기온은 섭씨 4도.
눈발이라도 날릴것 같은 날씨다.
오늘 밤에 영하 1도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겨울을 기다린다. 
장장 육칠개월의 길고도 긴 겨울이 지나고 
신록의 봄과 함께 잠시 찾아오는 맹렬한 여름, 
그리고 훅~ 한번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가을, 그리곤 겨울이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기온이 내려가면 
이곳 사람들은 괜시리 신나한다. 겨울이 오고 있기 때문에.. 맙소사..! 

구십을 넘어 백살까지 장수하는 이들이 많은 이곳 주민들은 
겨울엔 장례식이 거의 없다. 혹한의 긴 겨울은 쉽게 넘긴다. 
하지만 두어달이 채 안되는 짧은 여름엔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이 많다. 
가히 겨울 왕국인 것이다..


대학 도서관 공간의 향기를 맡으며 이 서고 저 서고 기웃거리고도 싶고, 
서점 어느 구석에 털썩 주저 앉아 책도 읽고 싶은 계절이다.



절제된 권위를 자랑하는 빅토리아 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내부 역시 영국의 왕궁 못지 않는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는데
그 널찍하고 아름다운 한 공간을 토론토 대학의 북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서점에서 이리 저리 책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이곳을 보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곳은 원래 토론토 시립 도서관이었다.


튼튼하고 보기에 자연스럽고, 낭만적이기도 한 두꺼운 나무 책장들이 가득한 가운데로
수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문학 작품들의 멋진 제목들.. 그리고 개성 가득한 표지 장정.. 
제목을 스치며 읽어가며 장정의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겐 하나의 즐거움이다.
책 뒤편의 짧은 서평들을 읽는 재미도 좋고..


디지털 인더스트리의 바램은 이 아름다운 종이 책들을 모조리 전자 서적을 바꾸는 거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는 만큼 paperless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는 커녕
거의 모든 기업의 사무, 결제 전산화 및 자동화 작업이 벌써 끝난 지금에도 
종이의 쓰임새는 전 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하고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지 못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종이 매체의 일간 신문들이
구독량이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고 반기고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다.


IT 인더스트리에 종사했던 난 누구보다 이른 시기에 전자 문서들과 접했었고
전자 문서 관련 시스템들을 설계, 개발 하곤 했었다.

비용에 관계없이 전투력과 관계된 軍 관련 매뉴얼등이 아마도 가장 먼저 전자화 된 경우가 되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핵 잠수함이나 전투기, 탱크 및 함정등 하이테크 장비들을 운영하기 위한
운영, 작동, 비상 조치 및 수리 매뉴얼등은 종이 매체로 이루어졌을 경우
그 매뉴얼의 볼륨과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 들이었다.

그러한 종이 매체의 매뉴얼들의 보관 관리를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전투력을 위한 공간이 매뉴얼 창고로 지정되어야 했던 것인데..
이러한 부문에서의 디지털 매뉴얼화 작업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며 접하는 책들이란
소설이나 수필 혹은 시 등의 따뜻하고 소박한 또 나른하기까지 한 문학 작품들이 대 부분인 마당에,
차가운 iPad나 디지털 북 전용 전자기기를 앞에 놓고 전자 화면을 하나 하나 넘겨간다는 사실은
전혀 cool 하지 않으면서 좀 기괴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비용 효과적 상품에 소비자의 선택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디지털 북 형태의 출판 시장이 전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럼 우리의 이 아름다운 서점의 모습은
이제 박물관의 '그 옛날 그 시절' 코너 쯤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거나
매우 고가의 부띠끄 형태나 옥션 형태의 호사가들의 전유물로 남게 될 지 모른다.


풍부한 인문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
인문적 자세를 오히려 터부시 하는 교조적 종교 집단들..
갈수록 피폐해지는 인간들의 공동체 안에선 단말마적 디지털 버튼 音 만이 점점 가득하다..


친근함 넘치는 풍부한 볼륨감의 장서들..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느껴지는 펄프의 부드러운 재질과 향기
한자 한자 정성스레 식자된 정겨운 폰트 셑.. 인류의 위대한 유산 '글'..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위대한 생각들, 따뜻한 마음들, 정다운 스토리들..

인류와 함께 오랜 동안 함께 동고동락 해온 소위 아날로그 시대의 매체들과 감성들은
이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그 끝 자락에서 서서 바라보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이제 그 글조차 140자 미만의 단문으로 가지 치기 당하고
전혀 삶에 필수적이지 않는 허접한 짧은 글들이 순식간에 수천, 수만, 수억의 타자에게로 전송된다.
거대하고 음모 가득한, 그리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조차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이 디지털 시장에서는 가볍고 즉시적인 單文들 만이 순식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사고 팔릴 뿐이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흰 편지지에 한자 한자 정성스레 펜으로 눌러 쓰다 구겨 버리고, 다시 쓰다 구겨 버리고..
밤을 홀딱 새다시피 온갖 정성으로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고는 다시 구겨 버리고..
그렇게 겨우 완성된 종이 편지 속에는 편지 속의 글과 함께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곤 했다.

정성이 담긴 종이 편지와 침발라 붙이는 우표, 그 과정에 스며들어 갔던 인간간의 따스한 상호작용..
그러한 낭만적 프로세스는 폭발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고도의 통신 인프라 발달로 인해
불과 몇년 사이에 모두 email 로 변해버린 현실을 우린 빠르게 거쳐 왔고,
각종 전문 자료와 매뉴얼등이 html 및 pdf 등의 각종 표준 전자 매체 형식으로 이미 디지탈화 되었으며
이제까지 디지털의 亂 속에서도 얼마남지 않은 아날로그 영역을 보존해 가며 겨우 생존하고 있던
문학 관련 서적 출판 업계와 offline 북스토어가 이제 빠르게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버츄얼 공간화 되어가고 비용 효율화 되어가는 마당에 책방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 모든 책들이 e북 화되면 책값이 대폭 저렴해지는 만큼 사람들의 독서량은 늘어날까?

.. 물리적 자원의 필요 없이 1초에도 수십만, 수백만 판으로 copy 될 수 있는 디지털 서적으로 인해
생태계의 어머니인 우리의 푸른 나무들은 더 푸르고 우거지게 자라날 수 있을까?

.. 서점을 왕복해야할 비용과 시간이 사라지는 만큼
사람들은 그 만큼의 휴식 시간이나 노동 시간을 더 확보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까?


우리의 세대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있을 뿐이다.

이데올로기의 상실.. 종교의 상실.. 문화의 상실.. 국가의 상실.. 낭만의 상실..인간 존엄성의 상실..
그리고 이제 인간으로서의 생물적 정체성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상실에 대한 내성이 이렇게 진이 박혀 오고 있는데
그 깟 물리적 공간의 상실 쯤이야..





4/20/2016

해바라기 들녁을 걸어가는 소녀들..,India 2006


아래의 그림들은 피터가 덜컹 거리는 봄베이 행 우편열차의 객차 이음새 부분에 앉아
세찬 바람을 맞아 가며 담아 본 것들이다.

인도 중부의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며 망원 렌즈로 담아 본 것들인데..
몇년의 시간이 흐른 뒤 문득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Tchaikovsky..Valse Sentimentale


자본의 지속적 증가와 이익 창출을 최고선으로 추구하는 소비 자본주의가
대대적이고도 반복적인 선전과 광고라는 세뇌적 수단을 통해 굳게 심어놓은 이미지에 있어서,
행복은 호사스러운 주거공간에서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필요 이상으로 맘껏 먹으며
에너지 효율을 비웃는 거대하고 무거운 차량을 몰며 빠른 속도로 어디든 달릴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대대로 이어오는 공동체적 지혜와 부족적 관습 그리고 가족 질서외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을 것 같은
이러한 농촌의 풍경을 마주한다는 것은 아마도 측은지심과 함께
자신이 속한 소위 쾌적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 공간 및 사회에 대한 안도와 감사로 귀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저 어여쁜 소녀들이 들판 한가운데를 걸어가며 느끼는 폭신 폭신한 흙의 감촉,
열대의 후끈함 속이지만 살아있는 대지에서 풍겨오는 온갖 생명들의 건강한 향기,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친족들이 열심히 생명을 일구는
조상 대대로 이어오는 삶의 터전인 밭으로 물과 음식을 나르기 위해 걸어가는 마음이..

마천루가 지천에 솟아 오른 도시의 중심로를 천장을 제대로 열어 젖힌 스포츠 카를 몰며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최신 힙합을 크게 틀고선 차가운 음료수를 스트로로 빨아 가며
물좋은 클럽으로 향하는 hyper 금발 아가씨들의 자아도취적 기분 보다..


덜 행복할까..?



하지만 문제는 이미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빠른 속도로 아메리카나이즈 되어 가는 거다.
종교와 이데올로기, 문화와 관습을 떠나 점점 더 미국화로 가속되어 간다는 거다.

스니커를 신고, 진을 입으며, 패스트 푸드를 먹고, 큰 차를 선호하면서..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편리함이란 방종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거다.

너무 많이 만들어 내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일하고..


문제는..
저 인도의 시골 소녀들에게
너희들의 삶이 존재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또 생태학적으로
편의와 생산성 위주의 서구 자본주의적 삶 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칠때,
그들이 수긍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고, 거대한 리무진을 타고 프롬 파티에 가는 것 보다,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부모님들의 식사를 날라 드리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너희들의 삶이 훨씬 더 값지고 보람찬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비교 우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 가.. 하는 것이다.



Tchaikovsky - None But The Lonely Hearts


속시원한 명쾌한 답은 없어도..
인생의 기차는 잘도 달린다.

아름다운 해바라기 들녁을 넘어..



life isn't that easy.. is it?